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3. 27. 18:24
우연 또는 필연 -2

지난해 이맘때쯤 집 현관의 중문에 새끼 발가락 골절상을 입었다.
큰 녀석 혼인을 한 달 여 남기고 깁스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아주 난감했었다.
반 깁스를 하고, 절뚝거리며 열흘 넘게 회사를 다니게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깁스는 풀고, 보호 붕대 정도만 감고 주의해서 다니라는 의사의 결정에 따라 불편하기는 해도 일반 구두를 신고, 조심 조심 다닐 수 있었다. 그때 신을 수 있었던 구두는 미국에서 관절염 환자용으로 만들었다는 SAS 이다. 다른 구두는 볼이 좁아 붕대를 감고는 신을 수가 없었다.
그 신발은 작년 1월 미국 여행 중에 막내 동생 가족과 함께 카멜이라는 도시로 가던 길목에 국내의 반값이라는 이유로 우연히 사게 되었던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 구두만을 신을 수 있게 된 상황에 처했으니 이 또한 우연인지? 필연인지? 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동생은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구두가 있었기에 발을 다친건지, 발을 다쳤는데, 우연히 구두가 있었던 것인지?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는 꾼 것인지, 나비가 잠시 장자로 머물고 있는 건지? 참으로 인연은 헤어날 수 없는 것인지, 인연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내가 발을 다치기 몇 달 전에 사 주었던 등산화 역시 붕대를 감고 신을 수 있는 유일한 등산용 신발이고 보니, 아내 역시 무의식적인 예견력이 있는지도 모르겠으니, 그저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순응을 하면서 모든게 필연이야 하며 사는 것이 그리 잘못된 마음가짐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