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께서 “텅빈 충만”에 도예가 윤광조 님의 말을 인용하며 나무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적어두신 내용이 있어 공감을 하며 읽은 적이있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 사전 검사를 하러 처음 들렀던 날, 거실 창 너머 숭실대학 테니스 코트 위로 커다란 나무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는 겨울이라서 잎이 진 상태였기에 그냥 큰 나무가 서 있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봄이 되어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면서 그 크고 의젓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말 아침마다 아내는 베란다 밖을 구경하며 재미를 느끼기 시작 했는데, 거실 소파에 앉아서 봄이 지나면서 나무의 자태가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며 즐거워했다.
한여름 내내 푸르름을 자랑하다가. 가을이 깊어져 잎을 모두 떨구게 되어도 워낙 거목이어서인지 그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노란 단풍이 들고 잎이 지기 시작했는데, 오늘 자세히 살펴 보니 어른 키 열 길도 넘어 보이니 2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인다. 언제가 초등학교에서 큰 나무가 태풍에 넘어가 학생이 다친 이후 학교마다 큰 나무를 모두 베어낸 적이 있었는데, 이사온 뒤 삼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더 큰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된다. 나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이유가 없을텐데, 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잘려나갈 것만 같으니 말이다. 내가 다니던 효창동의 금양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몇 아름들이 미류나무도 언젠가 가보니 밑동에서 아예 잘려있었다.
길가의 가로수가 전기줄에 닿는다고 마구 가지 치기를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죄 없는 나무를 해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잡초의 기준이 무엇일까? 인간이 필요해서 심은 곡식이나 과일나무가 크는 것을 방해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멀쩡한 풀이 잡초가 되는 것이다,
잠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보면 잡초는 제거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잡초도 소나 양 같은 초식 동물의 먹이가 되고, 때에 따라서는 약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아전인수 격으로 제 멋대로 해석, 스스로를 변명하며 정당성을 부르짖는 정치인들과 인간의삶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산을 허물고 나무를 마구잡이로 베어내는 행위가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비교하면 다를 바가 있을까?
언제까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머물게 될지는 몰라도 내가 살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인간에게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수십년 이상 한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나무가 허무하게 잘려나가지나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