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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사진작가 강운구씨가 열었던 사진전의 Title이었다. 강원도 산골에 사는 노인들을 찍은 흑백 사진을 주제로 해서 전시를 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때 어느 노인의 굳은살 박힌 손을 찍은 사진이 걸렸었다.
그런 노인을 만나 사진을 찍게 된 것이 우연일까 또는 필연일까 하는 의문을 사진전 Title로 잡게 되었다는 글은 본 기억이 어렴풋하다.

아침 출근길에 뒷산에 피고 있는 산수유 꽃을 보았다. 봄이 되었기에 스스로 꽃을 피우는 자연현상이라고 보기에는 우리가 모를 대자연의 섭리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런 저런 신경을 쓰지 않더라도 세상을 스스로 돌아가고, 인간이 스스로 처해진 굴레 속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려도 결국은 대자연의 섭리 속에서 살게 마련이니, 지금 내가 언젠가는 서울을 벗어나고파서 여기저기 부동산 중개업소를 기웃거리며 수소문하고 다니게 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부동산을 중개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 과연 우연일까? 필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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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이라는 의사가 쓰는 글에는 남다른 호소력이 있다. 평론가들처럼 의식적으로 어려운 낱말을 골라 쓰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수준의 단어와 알아보기 쉽게 쓰려는 흔적이 뚜렷한 의학용어가 친절하게 느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 누구에게나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단지 허물을 벗고 이 세상에서 벗어나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죽게 될 때 마지막 남은 이 몸뚱이를 어떤 방법으로든 세상과 나눌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지금껏 세상을 살면서 남에게 이로운 일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나마 뭔가를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내 작은 녀석은 언제부터인지 장기기증증서를 지갑에 넣고 다닌다. 어떤 동기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런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
자신의 유언장을 미리 써보면 어떻더라 하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고, 그런 내용을 엮어서 만든 책도 있다. 대부분 본인의 시신은 어떻게 해달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화장을 해서 어떻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원하고 있다. 화장을 할 바에야 몸의 일부분이라도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고 가는 것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의미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주변에는 의사로 생을 마치면서 본인의 시신을 기증하려 하던 분이 계셨는데, 자식들이 거부해서 마지막 소망을 이루지 못하셨다. 죽고 나면 내 몸뚱이마저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고 실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내 몸뚱이를 내 원하는 바 대로 처분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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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선생으로서 제대로된 제자를 하나라도 건질 수 있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여기에 옮겨 놓았다.
스님들 역시 반야를 얻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으로 목숨 걸고 용맹 정진을 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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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났다면 끝없이 전진하라.
박경철, 안동 신세계 연합병원 원장(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의 저자)

원아 세세 생생처 상어반야 불퇴전(願我 世世 生生處 尙於般若 不退轉). 이 글은 고등학교시절 국어선생님께서 칠판에 써 주셨던 구절이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때 까지는 물러서지 않고 전진하겠노라” 라는 뜻인데, 고려시대 보우국사의 발원문중의 하나다.
고려시대 불교에 중요한 위치를 가졌던 보우국사는 자신이 세속을 떠나 머리를 깎으면서 이 글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내 꿈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칠판에 쓰신 이 구절은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머릿속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이 반드시 이루고 싶은 무엇이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물러서지 않고 싸우겠다는 각오 정도는 있어야 한세상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선생님의 부연설명은 내 인생의 행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본래 창조의 자질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고작 1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는 아무리 고민해도 내가 이루어야 할 그것을 찾을 수 없었고, 설령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룰 능력이 없었다. 거창한 목표는 내가 가진 능력의 밖이었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평범하게 살자니 보우국사의 호통이 머릿속을 떠돌고, 그렇다고 능력이 따르지 못하는데 허망한 꿈만 꾸자니 물러서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항상 내 그릇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목표를 세우자. 그리고 꼭 이루자. 그 다음에는 좀더 큰 목표를 세우자. 그것을 쉬지 말자. 그것도 바로 불퇴전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의사가 되었으며, 재테크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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