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랜 굴드라는 천재 피아니스트는 70년대 초, 최영섭 님이 해설을 담당했던 KBS 1FM의 어느 클래식음악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 리스트는 베토벤을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교향곡 9곡을 모두 피아노 곡으로 편곡을 했는데, 그 중 제 5번을 글랜 굴드의 피아노 연주로 들려주어 당시 거실에 있던 릴 데크에 녹음을 해두고 수없이 되풀이해서 들었다. 그 이후로 6번 전원교향곡의 피아노 편곡 연주를 같은 프로그램에서 듣게 되었고, 그 두 곡의 연주에 빠져들어 어느새 그의 팬이 된 것이다. 그의 연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는데,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가 피아노 연주와 함께 들려오기도 하고, 화려한 테크닉과 자유 분방한 연주 속도 등등 때문에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는 연주가로 자리잡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로 뉴욕 필하모니와 카네기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4번 협연 후 지휘자인 번스타인이 청중들을 향해서 "여러분, 방금 연주한 곡의 템포는 제가 원하는 템포가 아니라 굴드가 고집한 템포이니, 템포가 너무 느리다고 느끼셨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보여주듯 고집도 대단했다고 한다.
처음 5번 교향곡 제 2악장의 연주를 들었을 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원곡보다도 오히려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을 받았고, 요즘 다시 들어봐도,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게 되 살아 난다. Sony에서 특집 음반으로 그의 연주를 CD에 모두 담아 발매를 한 덕분에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지금에도 그의 연주를 얼마든지 다시 들을 수 있으니,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이 처음 열어준 녹음의 세계에 고마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다시 듣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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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예술가
정상명 님
오래 전 어느 겨울 낸 우연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피아노 음악 소품들이 배경음으로 여러 편 이어지는 영화에 시선이 멎게 되었다. 오래 된 일이라 기억이 흐릿하지만, 피아노 음악이 영화의 대사를 대신하고 있었다. 전체 색조는 매우 우울하며 내면적이었다.
피아노 연주자는 글렌 굴드였다. 당시 나는 글렌 굴드에 대하여서는 아무 지식이 없던 터였지만 그 영화는 오랫동안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얼마 뒤 글렌 굴드의 음반 한 장을 선물 받았다. 영화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던 터라 받자마자 음반을 걸어놓았다. 저녁 무렵이었다. 서면 창으로 햇살이 조용히 들어와 작업실 마루 위에 부드러운 무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멜로디를 따라가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남자의 허밍소리가 들려왔다. 속삭이듯 부드럽고 낮은 소리였다. 너무나 놀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머리끝이 쭈뼛하게 일어서고 내 눈은 당황함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디지?---누구지?’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잠시 후에야 그 소리가 오디오에서 나오는 글렌 굴드의 음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연주하는 동안 억제 할 수 없이 감정이 고조되어 멜로디를 따라 부르던 목소리가 녹음된 것이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 글렌 굴드(1932~1982)는 세 살 때 벌써 악보를 읽었다고 한다. 50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그는 숱한 기행들을 남겼다. 이를테면, 1957년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데뷔 무대를 가졌을 때 연주 2분전에 도착한 그는 마치 북극탐험대원 같은 차림이었다. 여러 겹으로 된 모피외투 밑으로 올이 굵은 모양 없는 스웨터를 껴입고 있었는데 머리카락 역시 엉망으로 헝클어진 모습이었다. 그것은 도저히 대중 앞에 나설 연주자의 복장이라 할 수 없었다. 파격적인 그 모습은 지휘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까다롭고 섬세한 그의 연주 수칙은 ‘자기가 연주하고 싶은 곡만 연주할 것’ 과 ‘놀라운 기교를 발휘하는 소절을 듣고 싶어 안달하는 청중의 기대에 굴복하지 말 것’ 이었다.
그의 연주는 듣는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32세, 성공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돌연 대중 앞에서의 연주를 접었다. ‘연주회 중에 조는 사람들, 연주회에 참석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 거기 와 있는 사람들, 연주가 끝나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겠다는 열의에 차 있는 사람들로부터 도망가기’를 원했다. 한때 그는 연주장에서 일체의 감정의 표시나 박수를 못 치게 하는 ‘굴드안’ 을 작성한 적도 있다. 평온과 고요 속에서 대중과 일치된 감정으로 연주할 수 없는 속물적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던 그는 대중연주를 끊어버리고 오직 녹음을 통해서만 완전한 음악을 보여주려고 했다.
굴드가 유난히 내게 특별했던 것은 대중의 사랑으로부터 죽자고 도망쳤던 기이한 태도였다. 대문의 문패를 떼 내고, 인터뷰는 전화로만 했으며, ‘사랑 받지 않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학연, 지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분리를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정작 쏟아야 할 정열과 관심, 그리고 정작 들어야 할 소중한 내면의 소리보다는 남의 시선과 평판을 더 의식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렌 굴드같은 천재적인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을 책임져야 할 예술가가
아니겠는가. 내 머리맡의 글렌 굴드는 우리가 때때로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주곤 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05년 9월 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