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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과 포츠머스의 경기는 애초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았다. FA컵 8강전이었고, 모처럼의 공중파 중계 였지만 결과가 충분히 예상되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강호 아스날이 홈팀 포츠머스를 꺾는 것은 경기 전부터 모두가 예견했던 결과였다.
그러나 골이 터지면 터질수록 경기는 매력적으로 변해갔다. 예상대로 득점포를 계속 작렬한 것은 원정팀 아스날 선수들이었고 점수차는 5:0까지 벌어졌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홈팀 포츠머스 선수들은 그렇게 많은 골을 내준 뒤에도 여전히 용감하고 또 여전히 의욕적이었다. 오히려 다섯 골이나 앞선 원정팀 아스날 선수들이 낯선 분위기에 당혹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이유는 역시 팬들이었다. 홈에서 “영국 최고의 팀”을 맞아 수없이 얻어터지는 와중에도, 골을 내주면 내줄수록 팬들의 목소리는 높아만 간다. 어찌 보면 수치스러울 수 있는 홈 경기 스코어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누구 하나 선수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노래, 쉴새 없는 함성 그리고 선수들의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 맞춰 터져나오는 탄성에 이르기 까지, 어느새 경기의 스포트라이트는 그라운드 위를 벗어나 객석으로 옮겨지고 있다. 저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포츠머스 선수들은 순식간에 멈출 줄 모르는 전사들로 변신하고 있었다. 승부는 이미 갈려 이미 몸을 날릴 필요 없는, 아니 어쩌면 다음 경기를 위해 체력을 비축해둬야 할 그들이었지만 한 골만 터뜨리면 월드컵 본선에 오르기라도 하는 양 모든 선수들의 동작은 “최선”이라는 단어를 절로 떠오르게 만든다.
마침내 후반 종료 직전에 터진 포츠머스의 첫 골, 이제 고작 첫 골을 넣어 1:5로 승부에는 아무 변화가 없거늘, 모든 관중들은 기립 박수로 선수들을 치하하고 있다. 선수들 역시 이 한 골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듯 팬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박수를 돌려준다. 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당장의 승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선수들, 분명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들에게 승리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수단일 뿐이다. 첫 번째 수단이 어렵다면 최선을 다해 팬들의 작은 바람이라도 이뤄주는 것이 또 다른 보답일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대부분의 관중들은 자리를 뜨지않는다. 최선을 다한 그들의 선수가 모두 그라운드를 떠날 때까지 박수와 환호로 그 자리를 지켜고 서있다. 누가 감히 저들에게 충성하지 않으랴.
승자인 아스날 선수들도 경기장을 떠나는 내내 홈팬들의 놀라운 응원에 경의를 표한다. 포츠머스 팬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앙리와 비에이라, 카누의 모습이 차례로 화면에 잡힌다. 이 아름다운 장면을 잡아줄 줄 아는 카메라맨에게도 경의를!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앙리는 말한다.
3:0, 4:0, 5:0…. 스코어는 계속 벌어지지만 팬들의 노랫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이토록 놀라운 광경을 어디서 또 볼 수 있겠는가. 오늘의 영웅은 (두 골을 터뜨린) 내가 아니라 저들이다.”
결코 명문이라 부를 수 없는 프리미어리그 새내기팀 포츠머스지만 오랜 시간 지역민들과 함께 해온 그들의 역사는 축구가 아름다운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 셜록 홈즈를 창조해낸 코난 도일과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아카데미상을 탄 안소니 밍겔라와 같은 대중 예술가들이 이 팀에 혼을 빼앗긴 것도 이처럼 축구의 참 맛을 아는 팬들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문득 축구팀 없는 도시에 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진다. 이 아름다운 축구의 한 풍경을 직접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쓸쓸한 일이므로.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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